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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빨간그림자의 자료 창고</title>
<link>http://redshadow.pe.kr/tt/index.php</link>
<description>보고, 듣고, 느끼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hu, 26 Jan 2012 03:49:14 +0900</pubDate>
<item>
<title>감정의 증폭</title>
<link>http://redshadow.pe.kr/tt/index.php?pl=1121</link>
<description><![CDATA[ <b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26/120126020200229061/251584.jpg width="500" height="778"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126/120126020200229061/251584.jpg&width=643&height=1000','','width=659,height=600,scrollbars=1')"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center>Photo by <a href="http://hakanphotography.deviantart.com/gallery/?offset=48#/d3k2r3z" target="_blank"><font color="#177FCD">hakanphotography</font></a></center><br />
<br />
'천의 얼굴'을 갖고서 배역마다 성격이 변하는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도 쓰는 이야기에 따라 변한다. 슬픈 이야기를 쓸 때면 슬퍼야 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쓰려면 밝아야 한다. 나는 이 과정을 /증폭/이라고 부른다. 보다 진한 감정을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전달할 수가 없다. 내가 슬퍼야 그것을 읽는 이가 슬프다. 내가 행복해야 그것을 읽는 이도 행복하다. 일종의 /전염/이다. <br />
<br />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염/시키는 것은 에너지를 꽤 많이 필요로 한다. 나는 평상시에 희노애락을 강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더욱 큰 에너지의 필요를 느낀다. 결국 /자극/을 찾게 된다. 슬픈 감정을 더욱 슬프게 만들어주고, 행복한 감정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책, 영화, 사건, 사람, 관계 등등.<br />
<br />
요즘 내가 느껴야만 하는 감정이 있다. 밝고, 유쾌하고, 생명력이 넘치며, 행복한 감정이다. 싱그럽고, 무모하며, 열정적인 스무살 남짓한 청춘들을 그려내야만 하는데 그게 퍽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어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삼십대 중반을 달려가는 몸으로 이십대의 감수성을 가지려니 죽겠구먼. 밝고, 예쁘고, 따뜻한 것들을 붓고, 또 부은 후에야 겨우겨우 감정이 변화하겠지. 어느날 갑자기, 불연듯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싶도록 깜짝스럽게.<br />
<br />
처음으로 하이힐을 신고, 서툰 화장으로 립스틱을 바른 후 데이트를 나가는 여대생의 종종걸음. 세상에 대한 불안을 애써 호기롭게 누르고 있는 갓 소년 티를 벗은 남자의 가늘고 긴 손가락. 하루종일 닭갈비를 구워내서 머리카락에서 냄새 난다고 피곤한 얼굴로 웃는 아르바이트생의 옆모습.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내가 사랑할 만한 것이. 내가 반할 만한 것이. 서툰 입맞춤과 유난히 쿵쾅거리던 심장소리와 살갗과 살갗이 마주치는 감촉들. 애써 떨림을 감추는 어린 연인들의 서툰 애무. 너를 위해 인생을 걸겠다는 호기로운 장담과 맹목적으로 탐닉하는 둘 만의 시간. 또 뭐가 있더라. 뭐가 있더라.....<br />
<br />
불온하고, 변태적인 욕망을 시험해 보고 싶은 도발과 그래도 그러면 안될 것 같아 금기에 망설이는 순수함. 첫사랑, 첫키스, 첫섹스. 동시에 첫배신, 첫이별, 첫상처까지. 아름다운 순간도 처음이지만 더러운 순간도 처음이어서 스스로가 낯설어서 쩔쩔매던..... 허물벗기의 시간. <br />
<br />
그 시간을 다시 내게, 불러들여야 하다니.]]></description>
<category>빵 굽는 타자기</category>
<category>삶의 궤적</category>
<author>빨간그림자</author>
<pubDate>Thu, 26 Jan 2012 03:39:38 +0900</pubDate>
</item>
<item>
<title>빵 굽기</title>
<link>http://redshadow.pe.kr/tt/index.php?pl=1118</link>
<description><![CDATA[ <b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1027/111027022303186233/711658.jpg width="500" height="667"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1027/111027022303186233/711658.jpg&width=750&height=1000','','width=766,height=600,scrollbars=1')"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center>Photo by <a href="http://scherbius.deviantart.com/art/Writer-s-Block-1-87076536" target="_blank"><font color="#177FCD">Scherbius</font></a></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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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내가 얻은 일감은 두 건이다. 정식 계약건만 따지면 말이다. 그 외에 자잘한 제안들이 있었고, 진행하다 엎어졌다. 계약이 체결된 일감들은 지인의 소개로 이루어졌다. 이 바닥의 일감은 모두 제비가 박씨 물어오듯이 아는 사람들이 물어다 주는 것이구나! 신선한 깨달음이다.<br />
<br />
하나는 판타지 단편 소설을 쓰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방송 체험전 원고를 쓰는 것이다. 전자는 선금을 받았고, 원고는 넘겼고, 잔금은 못 받고 끝났다. 후자는 페이는 좋은 편이고,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고, 내년 초까지 이어지는 일이다. 운이 좋게 계약을 따낼 수 있었고, 어찌 되었든 글쓰기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올 한해 내가 글쓰기로 벌어들인 돈은 20대 대졸자 사회초년생보다 적다. 하지만, 동종업계 종사자 치고는 상당히 많이 번 편이다. 그러니 나는 내 스타트에 대해서 행운이라 여기며 자부할 심산이다.<br />
<br />
올해 두 편의 희곡이 프리뷰의 형태로 공연 되었다. 두 편 모두 내년에 정식으로 대학로에서 공연을 하게 될 것이다. 작가료가 주어진다고 해도 많지 않다. 공연이 잘 올라가서 추가 수익이 난다고 하더라도 한참 뒤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 준비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할테고, 달리 알바를 할 여력이 안될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년을 어찌 잘 버티느냐가 관건이다.<br />
<br />
다행히 현재 나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어서 굶어죽을 일은 없다.(염려마세요, 이웃분들) 방송국쪽 계약이 보수가 좋은 편이어서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이진 않을 것 같고, 이번 겨울에 아르바이트로 돈을 많이 벌어두면 내년에는 일을 안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3월부터는 글 쓰는 것 말고는 일체 다른 일을 안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궁리에 바쁘다.<br />
<br />
내년에는 정말 멋진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야만 하는데. 내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할텐데. 지인이 아닌 일반 관객을 만나는 첫 대면이어서 준비를 많이 하고 싶다. 다수를 원하지는 않지만, 깊이 사랑받고 싶다.]]></description>
<category>빵 굽는 타자기</category>
<category>삶의 궤적</category>
<author>빨간그림자</author>
<pubDate>Thu, 27 Oct 2011 03:02: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졸업식과 졸업공연</title>
<link>http://redshadow.pe.kr/tt/index.php?pl=1117</link>
<description><![CDATA[ <b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1027/111027020424182985/599087.jpg width="450" height="398"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1027/111027020424182985/599087.jpg&width=868&height=768','','width=836,height=600,scrollbars=1')"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br />
<br />
석사 논문 쓴다고 삽질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예술학교 들어간다고 했던 때가 며칠 전 같은데 졸업을 했다. 내 인생의 정규 교육 과정이 모두 끝났다. 서른 셋. 8살 초등학교 시절부터 셈한다면 25년간 주리줄창 학교를 다녔다. 즐거웠고, 행복했다. 지난 시간들의 기록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매 순간, 갈팡질팡하며 어쩔 줄 몰라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케 길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br />
<br />
예리하게 갈고 닦은 비평 언어를 구사하게 해주었던 아카데미도 즐거웠고, 창작을 단기간 내에 가능하게 훈련시켜 주었던 예술학교도 멋진 곳이었다. 선물처럼 주어진 졸업공연도 무사히 끝났다. 이제는 정말 울타리 밖에서, 프로들과 함께 어울리며 작업을 해야만 하는 시간들. 설레고, 즐겁다. 20대 내내 그토록 불안하고, 스스로에 대한 회의 때문에 힘겨웠는데 서른을 훌쩍 넘으니 웬걸. 이전보다 덜 불안하고, 덜 고민한다. <br />
<br />
그건 아마도..... 어찌 되었든 버티고 있었던 탓일게다. 글을 써서 밥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어찌 되었든 손에서 글을 놓지 않는 방향으로 시간을 버텨왔다. 작가가 될만한 재능이 있는 것인지 회의하면서도 어찌 되었든 창작판으로 가서 콕 박혀서 웅크리고 버텼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퍽 잘한 일이다 싶다. 이제야 겨우 '작가'가 되는 것이 가능해졌으니 이젠 '좋은 작가'가 되도록 갈고 닦는 일만 남았다. 옛날 기록들을 돌이켜 보며 몰래몰래 자랑스러워한다. 정말 가능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찌 되었든 가능해 졌다. 신기하다. <br />
<br />
이제는 조금 더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져도 될 것 같다. 길고 길었던 나의 배움의 시기가 끝났다. 돌이켜 보아도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공부하며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 물론, 등록금 때문에 미친듯이 알바를 해야했고, 대출을 받아야만 했지만 그래도 투자를 하는 쪽이 남는 거였다고 생각한다. 수고했어, 잘했어.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대단해.]]></description>
<category>예술학교의 엘리스</category>
<category>삶의 궤적</category>
<author>빨간그림자</author>
<pubDate>Mon, 10 Oct 2011 02:04:2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제 작품으로 공연을 해요.</title>
<link>http://redshadow.pe.kr/tt/index.php?pl=1112</link>
<description><![CDATA[ <b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925/110925124610023539/447352.jpg" width="580" height="801"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br />
<br />
좌석이 많지 않아서 전화예약을 하시는 게 좋아요.<br />
포스터에 있는 기획의 연락처로 연락하시던가 제게 연락주시면 됩니다.]]></description>
<category>예술학교의 엘리스</category>
<category>삶의 궤적</category>
<author>빨간그림자</author>
<pubDate>Sun, 25 Sep 2011 12:46:10 +0900</pubDate>
</item>
<item>
<title>힐리어드 앙상블 음악극, 그 집에 들어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title>
<link>http://redshadow.pe.kr/tt/index.php?pl=1107</link>
<description><![CDATA[ <b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402/110402031318795847/292963.jpg" width="389" height="348"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br />
<br />
<center>공연일시: 2011년 3월 26일(토)-27일(일) <br />
공연장소: LG아트센터<br />
<br />
메인 제작: 스위스 로잔느 비디극장(Theatre Vidy-Lausanne) <br />
공동제작: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br />
<br />
작곡, 연출: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br />
출연: 힐리어드 앙상블(The Hilliard Ensemble)<br />
<br />
&nbsp;&nbsp;&nbsp;&nbsp;로저스 코비-크럼프(Rogers Covey-Crump), 테너<br />
&nbsp;&nbsp;&nbsp;&nbsp;데이비드 제임스(David James), 카운터테너 <br />
&nbsp;&nbsp;&nbsp;&nbsp;고든 존스(Gordon Jones), 바리톤 <br />
&nbsp;&nbsp;&nbsp;&nbsp;스티븐 해롤드(Steven Harrold), 테너<br />
<br />
조명, 무대: 클라우스 그륀베르크(Klaus Grünberg)<br />
의상: 플로렌스 폰 게르칸(Florence von Gerkan)<br />
음향: 빌리 봅(Willi Bopp)<br />
<br />
<a href="http://heinergoebbels.com/" target="_blank">http://heinergoebbels.com/</a><br />
<br />
<br />
<center><EMBED autostart="0" src="mms://222.106.146.9/media/down/1767/cl1.wmv"></embed></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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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padding:10; background-color:#EDF9FF;">가사로 사용된 텍스트:<br />
<br />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T.S. 엘리엇, 1917<br />
"낮의 광기(The Madness of the Day)“, 모리스 블랑쇼, 1949<br />
"산으로 가는 소풍(Excursion into the Mountains)", 프란츠 카프카, 1912<br />
"Worstward Ho“, 사무엘 베케트, 1982</div></center><br />
<br />
<br />
힐리어드 앙상블의 음악극 <그 집에 들어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를 예매했을 때 기대했던 부분들이 무엇이었더라. <br />
<br />
일단은 '음악극'이라는 말 때문에 뮤지컬과 유사한 그 무언가를 기대했던 것 같다. 국내에서 뮤지컬과 음악극이라는 말이 혼용되어 사용되기 때문에 아마도 정형화된 스타일의 뮤지컬은 아니어도 그 언저리의 어떠한 형식이 아닐까 넘겨 짚었다. 극시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음악을 많이 차용하는 형태일거라 기대했다. 즉, 클래식 음악계에서 만드는 음악극말이다. 음악이 매우 강하고, 극의 형식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때 나타는 형식이 아닐까 상상했었다.<br />
<br />
또 하나는 힐리어드 앙상블이 중세 음악을 주로 하는 아카펠라 집단, 즉 연주자들이 아닌 가수들이었기 때문에 그레고리안 성가풍의 음악을 기대했다. 이들이 부르는 텍스트가 T.S. 엘리엇, 모리스 블랑쇼, 사무엘 베케트,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살짝 미간이 찌푸려지긴 했지만(난해하다, 난해하다, 난해하다구!) 그레고리안 성가풍으로 운율과 멜로디가 얹혀진다면 꽤 아름다울 것도 같았다.<br />
<br />
그러니까 나의 기대는 여기까지. <br />
<br />
인터미션 없이 150분간 진행되는 공연이어서 지각 관객을 위해 5분 늦게 시작한 공연이었다. 그날 따라 안내 멘트가 굉장히 길었다. 5분이라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작품에 대한 언질이었던 것 같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봐달라는 당부는 관객이 길을 잃고, 맥락을 잃을 수 있다는 극장 측의 염려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포스터와 홈페이지에 쓰여있는 "고정관념을 버려라"라는 문구. 공연장 쪽에서 '고정관념을 버린다' 내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등등의 카피가 나올 때면 대체로 불길하다.<br />
<br />
팜플렛을 살펴보니 2010년 4월 30일자 타임즈에 실린 리처드 모리슨의 평이 있었다. <br />
<br />
<div style="padding:10; background-color:#F0F0F0;">2008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후 세계를 투어한 하이너 괴벨스의 뛰어난 음악극은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거나 거의 미칠 것 같이 깊이 있게 당신을 사로잡을 것이다. 내 경우엔 후자였다.<br />
<br />
이 작품이 현대인의 허무한 삶에 대해 신선한 시각을 던져주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수십 년 전에 쓰여진 함축된 의미로 가득한 문학작품을 의도적으로 채택한 것은 새로운 빛을 던지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었던 듯 하다. 실제로, 그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 같은 작품의 제목이 -그 집에 들어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이를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인간성의 20세기(21세기)적 우울함을 고찰한 작품 가운데 음악과 무대연출, 텍스트와 공연내용이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버무려진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br />
</div><br />
<br />
이 공연은 힐리어드 앙상블의 공연 스타일 중에서도 상당히 실험적으로 나간 쪽에 속하는 것 같다. 영미권의 관객이라면, 그 중에서도 문학적 소양이 깊은 관객이라면 언어에 입혀진 단조롭고, 정제된 음율들만으로도 충분히 신비함과 신선함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막과 함께 봐야만 했던(그리고 설사 원어를 알아듣는다고 하더라도 난해함을 피할 수 없을 텍스트!!) 국내 관객에는 다소 힘든 공연이었다. 이상의 '오감도'를 판소리 명창이 랩으로 구현한 것과 유사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영어를 알아듣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유럽 문학에 대한 깊은 예술적 소양을 보는 이에게 요구하는 공연이었다. <br />
<br />
관람 자체로서의 의미는 충분하다. 궁금했던 공연이고, 경험했다는 것 자체로 의의를 가지고 싶다. 그러나 즐겁고, 재미있으며, 고양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공연은 아니다. 리처드 모리슨이 위에서 말했듯이 이 공연은 공연을 이해하는 사람이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든 20세기적인 우울함과 권태, 살풋이 일어나는 짜증 섞인 회의를 느끼게 하는데는 성공한다.<br />
<br />
이 공연의 장점은 일단 네 명의 성악가들의 기량이다. 정말 실력이 좋다는 건 노래를 조금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단지, 이들의 기량에, 소리에 어울리는 음악들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단순하고, 밋밋하고, 문장 읽기에 가까운 음율을 사용했다. 이는 연출가이자 작곡가인 하이너 괴벨스의 의도인데 이 작품 전체가 괴벨스의 지휘 아래에 있어서 힐리어드 앙상블의 이름이 메인에 있지만 괴벨스의 색깔이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하이너 괴벨스 연출이 자신의 곡을 불러줄 가수들로 힐리어드 앙상블을 캐스팅한 느낌에 가깝다. '연출은 마음에 안들지만 배우는 좋아!'라는 마인드와 유사하게 괴벨스의 작품 스타일은 그닥 끌리지 않지만 힐리어드 앙상블의 저력에는 감탄하게 된다. <br />
<br />
<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402/110402031318795847/369864.jpg width="500" height="332"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402/110402031318795847/369864.jpg&width=798&height=530','','width=798,height=530,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br />
<br />
두번째의 장점은 무시무시하게 퀄리티가 높은 무대이다. 거실, 2층짜리 단층집과 도로, 호텔방. 이렇게 세 번 무대 세트가 바뀌는데 공간 활용에 대한 부분은 좋았다. LG 아트센터의 무대가 꽤 큰 편이라서 공간을 채우는데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달랑 4명 등장하는 공연인데 텅 빈 느낌이 없었다. 그건 무대 디자인의 힘이다. 거실은 벽을 겹쳐놓아 무대의 세로 사이즈를 줄였고, 2층짜리 단층집은 세트 자체가 독특했다. 호텔방은 삼각형 모양으로 등장한다.<br />
<br />
그나저나 세트 하나 만들 돈이면 우리나라에서 고퀄리티의 연극이 나오겠더라. 아니, 왜, 벽지와 전등과 문고리가 이렇게 높은 퀄리티인겁니까! 실내 인테리어에 쓰는 고급 제품을 진짜 갖다 썼다. 영화 세트나 드라마 세트 만들 듯이 무대를 만들었다. 소품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고급이라서 진짜 깜짝 놀랐다. 세트를 화려하게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진짜 인테리어 제품을 가져다가 인테리어를 해놨다. 유리창의 블라인드가 자동이고, 주차장 창고는 또 왜 그렇게 리얼하고, 전기합선으로 인해 형광등에 불꽃이 튀는 스펙터클, 호텔방의 TV는 그렇다쳐도 침대보와 전장 전등과 벽지는 왜 이렇게 화려한거야. 이 공연에서 제일 정상적이고, 공연적이고, 무난하게 음향이라면 말 다한거다. 조명과 무대가 모두 클라우스 그륀베르크의 작품이었는데 이 사람은 굉장히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임이 틀림없다.<br />
<br />
<br />
<font color="#177FCD"><b>첫번째,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b> </font><br />
<br />
<table align=left><tr><td style=padding-right:5><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402/110402031318795847/202633.bmp" width="310" height="34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하는 유명한 시 '황무지'를 지은 T. S. 엘리엇의 <a href="http://blog.naver.com/hkk728?Redirect=Log&logNo=40019027177" target="_blank"><font color="#009966"><u>'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u></font></font></a>는 그의 여타 다른 작품들이 그러하듯 난해하고, 난해한 텍스트이다. 연가(戀歌), 즉 love song인데 어딜 봐서 이 시가 사랑 노래로 느껴지는가. 쓸쓸하고, 쓸쓸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상호텍스트가 많은(즉, 각주가 많이 딸린) 문학 작품을 싫어하는터라 엘리엇은 내게 지나치게 현학적인, 예언자적 자의식 과잉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 시인이다. 엘리엇의 시는 읽는 시가 아니라 공부하는 시이고, 덕분에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깝깝해진다.<br />
<br />
시의 내용과 등장인물들의 행위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중절모와 프록 코트를 입은 네 명의 남자들이 테이블과 그 위에 있는 찻잔과 주전자, 집 안에 있는 커튼, 액자를 이사하는 것 마냥 상자에 싸고 넣고 다시 다른 상자를 가져와 똑같아 보이지만 다른(액자 그림이나 찻잔과 꽃 색깔, 커튼 문양이 다른) 것들을 똑같은 위치에 장식한다. 무대 위의 행위는 그게 끝이다. <br />
<br />
엘리엇의 시를 이런 방식으로 해석했다는 데에 대해서 뭐라고 덧붙일 말은 없다. '공연'이라는 현장성을 우선하는 장르로서는 차용하기 힘든 작품인데 그걸 무대화했다는 것만으로도 용감한 시도라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쓸쓸하고, 무의미함에 대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던 것이라면 시나 공연이나 모두 성공했다. 관객들이 쓸쓸하고, 허무하고, 힘들어한다..... <br />
<br />
<b><font color="#177FCD">두번째, 낮의 광기</font></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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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align=left><tr><td style=padding-right:5><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402/110402031318795847/312746.bmp" width="310" height="34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 다른 세 명의 작가에 비해서 모리스 블랑쇼라는 소설가의 이름이 낯설었다. 그 낯설음 때문에 검색을 해봤더니 그는 <a href="http://blog.naver.com/sinbaltong?Redirect=Log&logNo=130067327740" target="_blank"><font color="#009966"><u>소설가라기 보다는 철학자로 유명한 사람</u></font></a>이었다. 물론, 소설도 여러 편 발표했지만 그래도 그의 핵심에는 철학이 있다고 보인다. 까뮈도 소설도 쓰고, 희곡도 발표했지만 그가 철학자로서 더 영향력이 크듯이. 모리스 블랑쇼도 그러한 인물로 파악된다. 그것도 20세기 탈구조주의로 대표되는 프랑스 철학자. 그의 지인들이 레비나스와 조르쥬 바타이유이고, 데리다가 그의 장례식에서 추모 연설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감을 잡았다. 아아, 내가 이 사람의 정체를 미리 알았더라면 이 공연을 '그레고리안 성가풍'일거라는 황당한 착각을 하지 않았으련만은. 물론, 엘리엇과 카프카나 베케트 만으로도 충분했지만 화룡점정.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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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이 맞춰지자 연출가의 성향과 취향과 공연 세계가 파도가 밀려오듯이 덮쳐온다. 하이너 괴벨스, 당신은 그런 좌표에 있는 예술가로군요. 애시당초 아방가르드였던게야.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회의적이고, 지나치게 지성적이며, 인간보다 사유가 우선되는 텍스트 중심의.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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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작품은 히치콕의 영화를 연상 시킨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 도청하고, 지켜본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자기 앞에 앉은 사람이 방을 떠난 사이에 아랫층 바에 있는 사람이 그 방으로 들어와 방을 뒤적이고, 옆집에 사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구조들 말이다. 서로 소통이 안되는 사람들, 말과 말은 엇나가고, 삶의 의욕도 없어보이는 사람들, 눈이 멀었다던가 혼자서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던가 하는 불구성이 느껴지는 인물들. 공연과 원 텍스트의 조합이 엘리엇 만큼 생뚱맞지는 않았다. 아쉬운 게 있다면 성악가들의 노래가 아름다울 수 있는 기회가, 즉 솜씨를 뽐낼만한 극적 상황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그만큼 짜임새가 좋았던 거고, 나쁘게 말하면 이 공연을 버티고 볼 수 있는 힘이 되는 게 노래인데 그 노래를 감상할 기회가 그나마도 적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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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177FCD"><b>막간, 산으로 가는 소풍</b></font><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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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align=left><tr><td style=padding-right:5><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402/110402031318795847/556503.jpg" width="310" height="231"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워낙에 굵직하고 난해한 텍스트들이 앞에 포진하고 있어서 카프카님께서는 오히려 귀여우심. 게다가 막 짧으심. 덕분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지나가셨다. "우리가 노래 부르지 않는 것이 불가사의다"라는 문장이 매우 재미있었다. 노래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 문장이 노래로 나오는 것을 듣고 있는 상황이 유쾌하달까. 이 정도의 텍스트와 이 정도의 톤으로 전체 공연이 만들어졌더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하이너 괴벨스의 취향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성악가들의 목소리의 매력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부질없는 가설이며 상상이지만 말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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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padding:10; background-color:#F0F0F0;">산으로 가는 소풍(1912)<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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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르겠다" 나는 들리지 않게 울었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그럼 그건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해 끼친 적이 없고, 아무도 내게 해 끼친 적이 없지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한 무리의 아무개들. 모두가 다 사실은 아니다. 오로지,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 반면, 한 무리의 아무개들이면 차라리 괜찮겠지. 나는 소풍을 정말 가고 싶다. - 안 될 게 뭐 있겠어? - 한 무리의 아무개들과. 물론, 산으로, 거기 말고 어디있겠는가? 팔을 들어 서로서로 엮고 수없이 많은 발이 그렇게 가깝게 걸으면서 이 아무개들은 어찌도 서로를 거칠게 밀치는지! 물론 그들 모두 정장을 입었다. 우리는 아주 즐겁게 간다. 바람이 우리 사이로, 우리 무리의 틈새로 분다. 우리 목구멍이 부풀어 올라 산에서 막힘없이 뚫린다. 우리가 노래 부르지 않는 것이 불가사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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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right">출처: LG아트센터 팜플렛</div></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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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가 바뀔 때마다 무대 위에서의 세트 전환 자체를 보여주는데 이 막간은 그냥 두번째 세트 앞에서, 즉, 벽돌 집 앞에서 이루어진다. 소외 효과를 위해서 그토록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무대들의 뒷면을 보여주고, 해체하고 설치하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이미 충분히 관객이 소외된 상황에서는 단순한 숨통 틔우기 식의 볼거리로 전락한 감이 없지 않다. 즉, LG아트센터 무대 뒷편이 저렇게 생겼다는 것에 대한 관음증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구실을 했다고 해야할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단조로운 음조와 알아듣기 힘든 말들이 끝났다는 표시로 작동했다고 해야할까. 세트 전환 장면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았던 것이 분명한데, 그게 연출가의 의도에 부합했는지는 의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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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ont color="#177FCD">세번째, Worstward Ho</font></b><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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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align=left><tr><td style=padding-right:5><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402/110402031318795847/277036.jpg" width="310" height="187"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사무엘 베케트는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극작가로 보다 유명하지만, 소설을 여러편 집필하기도 했다. 소설을 쓰다가 너무 힘들 때 희곡을 썼다고 한다. 베케트의 소설은 <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13810" target="_blank"><font color="#009966"><u>문지스펙트럼에서 나온 단편집</u></font></a>을 읽은 게 전부인데 읽다보면 왜 그가 소설을 쓸 때 그렇게 힘들었는지가 이해가 간다. 읽는 내내 머리가 아팠고, 멀미가 나려고 했다. 활자중독증에 가까운 나도 이 지경인데 쓰는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공연 텍스트인 "Worstward Ho"(찰스 킹슬리의 역사소설인 "Westward Ho!"의 제목 패러디라고 하는)를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읽었다고 해도 무슨 내용인지는 파악하기 힘들었을 듯 하다. 자막을 봐도 쉽게 이해가 안 가고, 원어민이라고 해도 그의 사고를 따라가기란 몹시 힘들다. 농담이 아니라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베케트의 소설에 비하면 열배는 쉬운 것 같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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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이너 괴벨스는 베케트의 소설 한 편을 호텔방에 있는 네 남자가 창 밖을 바라보며, 독백인듯 대화인듯 모를 말들을 하며, 어린 시절의 한 편린을 함께 바라보며 끝나는 무대 행위로 형상화한다. 프로젝터를 써서 슬라이드 영상을 보다가 마지막에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영상으로 끝을 맺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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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전반적으로 힘들어했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의 뇌란 간사해서 이렇게 몸의 피로가 가시고 난 뒤에 곰곰히 돌이켜보면 그래도 꽤 건질만한 부분들이 많았던 공연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다시 관람하라고 한다면 초대권을 준대도 가지 않을 공연인데 말이다.(웃음) 편집 영상이라던가, 텍스트를 찬찬히 내 속도로 음미해 가면서 되읽을 때 느껴지는 정서들을 공연 장면과 함께 떠올려 본다던가, 1분여 정도의 짧은 시간만 힐리어드 앙상블의 조화로운 음색들을 들어보며 감탄한다던가(같은 멜로디를 30분 반복한다는 게 문제다. 짧게만 들으면 무척 좋다.) 하는 행위들을 통해 기억이 풍성해지고, 관람이 흡족해지는 것을 느낀다. 몹시 어려운 산을 인상을 있는대로 쓰고 나서 오른 후 집에 와서 뻗는다. 한숨 자고 일어난 후 '뭐, 그래도 나쁘진 않았어'라고 혼자 의기양양해 하는 얄팍한 층위의 자기 만족.<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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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들어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그 공연을 보러갔지만 빠져들진 않았다. 아마 그 정도의 가벼운 스침이 하이너 괴벨스가 파악하는 '예술'과 '관계'의 참 모습인지도 모른다. 영문을 모르겠고, 쓸쓸하고, 파악되지 않고, 허무하며, 지루한 감정 말이다. 20세기, 즉 세기말을 바라보는 지성들의 나른하고 우울한 사고들을 엿볼 수 있었다. 즐거웠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쓸쓸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허무하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거예요!'라고 답하고 싶다. 솔직히 자기 공연을 보고 관객이 허무함과 우울을 느끼길 바라는 심리를 잘 이해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하는 예술가도 있는 거려니... 한다. 그게 당신의 사고라면 나는 그것을 보았다. 당신의 예술 세계에 들어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난 그저 흘끗 쳐다본 후 발길을 돌렸을 뿐이다.]]></description>
<category>클래식</category>
<category>공연장 마실</category>
<author>빨간그림자</author>
<pubDate>Mon, 04 Apr 2011 13:09:0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사랑의 단상 11</title>
<link>http://redshadow.pe.kr/tt/index.php?pl=1105</link>
<description><![CDATA[ <b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216/110216154105799150/904881.jpg width="500" height="535"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216/110216154105799150/904881.jpg&width=669&height=716','','width=685,height=600,scrollbars=1')"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center>Illustrate by <a href="http://kayceeus.deviantart.com/gallery/#/d2h0zj7" target="_blank"><font color="#177FCD">Kaycee</font></a> </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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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padding:10; background-color:#F0F0F0;">그 사람을 정의하려는 대신("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나는 내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당신을 알려고 하는 이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당신을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힘으로 정의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나 자신을 당신의 힘과 맞선 또 하나의 힘으로 설정하려 한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내게 주는 고통이나 즐거움에 의해서만 정의될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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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right">-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p197</div></div><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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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가장 이상한 속성은 '불균형'이다. 사랑은 받는 만큼 돌려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애틋하게 상대를 원해도 돌아봐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서로를 같은 정도로 사랑하는 연인들도 있으나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 사랑의 속성은 아니다. 사랑은 상대에게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유래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사랑은 100만큼을 받았기 때문에 그만큼을 돌려주는 정당한 거래가 아니다. 준 적이 없는데 받았다고 말하고, 받은 적이 없는데 줬다고 말하는 매우 불공정하고, 비이성적인 거래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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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모든 사랑은 그 근원이 자기 자신에게서 유래한다. 큐피트의 화살이 가슴을 관통하는 순간, 사랑은 시작된다. 나의 가슴을 뚫고 지나간 이 달콤한 아픔은 무엇인가. 의문이 시작되는 순간, 아픔의 원인인 대상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당신을 바라보고, 느끼고, 알기를 원한다. 돌려받지 못하는 애정에 고통스러워할지라도 여전히 나는 당신을 바라보고, 느끼고, 알기를 원한다. 탐욕은 대상으로 인해 멈춰지지 않는다. 거절은 사랑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단지, 나를 아프게 할 뿐이다.]]></description>
<category>생각하다</category>
<category>바벨의 도서관</category>
<category>롤랑 바르트</category>
<author>빨간그림자</author>
<pubDate>Mon, 14 Feb 2011 15:41:05 +0900</pubDate>
</item>
<item>
<title>미셸 반던 에이크하우스(Michel Vanden Eeckhoudt)</title>
<link>http://redshadow.pe.kr/tt/index.php?pl=1104</link>
<description><![CDATA[ <br>예술의 전당에서 하고 있는 사진 전시 <델피르와 친구들>을 통해서 알게 된 작가인데 완전 내 취향이다. 유머와 냉소, 천진난만함과 그로테스크가 섞여있는 시선이 마음에 든다. 전시장 내부에서 볼 수 있었던 에이크하우스의 포토북에는 더 많은 편린들이 있었지만 웹에서 건진 건 이 정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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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31/110131200133477977/374950.jpg width="500" height="350"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131/110131200133477977/374950.jpg&width=729&height=511','','width=729,height=511,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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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31/110131200133477977/698705.jpg width="500" height="351"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131/110131200133477977/698705.jpg&width=729&height=512','','width=729,height=512,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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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31/110131200133477977/413599.jpg width="500" height="343"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131/110131200133477977/413599.jpg&width=722&height=495','','width=722,height=495,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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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ref="http://www.agencevu.com/photographers/photographer.php?id=83" target=_blank>http://www.agencevu.com/photographers/photographer.php?id=83</a><br />
; 이미지를 찾느라 구글링을 통해 알게 된 사이트인데 놀랍다.<br />
클릭을 할 때마다 보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랄지. <br />
세상은 넓고, 재주있는 자는 많다니까.]]></description>
<category>사진</category>
<category>이미지 단상</category>
<author>빨간그림자</author>
<pubDate>Mon, 31 Jan 2011 20:17:51 +0900</pubDate>
</item>
<item>
<title>[콘서트] 故 김광석 15주기 추모 공연</title>
<link>http://redshadow.pe.kr/tt/index.php?pl=1100</link>
<description><![CDATA[ <b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09/110109020325236263/776979.jpg width="550" height="411"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109/110109020325236263/776979.jpg&width=605&height=452','','width=605,height=452,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09/110109020325236263/177488.jpg width="550" height="413"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109/110109020325236263/177488.jpg&width=605&height=454','','width=605,height=454,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09/110109020325236263/397156.jpg width="550" height="415"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109/110109020325236263/397156.jpg&width=605&height=456','','width=605,height=456,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09/110109020325236263/112707.jpg width="550" height="413"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109/110109020325236263/112707.jpg&width=605&height=454','','width=605,height=454,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09/110109020325236263/290201.jpg width="550" height="415"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109/110109020325236263/290201.jpg&width=605&height=456','','width=605,height=456,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09/110109020325236263/833055.jpg width="550" height="416"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109/110109020325236263/833055.jpg&width=605&height=458','','width=605,height=458,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center><table><tr><td><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09/110109020325236263/030900.jpg width="550" height="415"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redshadow.pe.kr/tt/image_pop.php?imagefile=attach/0109/110109020325236263/030900.jpg&width=605&height=456','','width=605,height=456,scrollbars=0')"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center><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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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고인이 자주 노래를 불렀던 학전 소극장에서 추모 공연이 있었다. 고인을 아끼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조촐하게 그의 넋을 기리는 자리였다. 알음알음 찾아온 60여명 내외의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그를 기억하며, 행복해 하고 아쉬워했다. 보헤미안의 영혼을 지닌 아르가디니의 손에 이끌려 이 자리에 갔는데 영하 12도의 날씨가 무색하리만큼 뜨거운 자리였다. 수없이 많은 대학로의 극장에 연극을 보러 다니면서도 이상하게 학전은 늘 음악으로 찾는다. 몇년전, 볼프 비어만의 콘서트도 아르가디니의 손에 이끌려 찾아갔던 자리였는데. 공간에 대한 기억이 노래와 함께 겹겹이 쌓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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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 받지 않고, 순서도 정해져 있지 않고,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그의 노래를 부르는 자리였다. 관객에게 노래를 시킨다니! 관객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니!!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는데 그건 내가 노래부르기를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느꼈던 감정이고, 다들 어찌나 노래를 잘하시고, 부르길 원하는지 4시간이 훌쩍 지나갈 정도였다. 호프집과 속옷판매점을 하시는 평범한 이웃분들도 있었고, 노래를 업으로 삼고 부르시는 분들도 있었다. 모두들 김광석의 노래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사회자 박학기씨께서 쉽게 노래가 만들어지고, 쉽게 노래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15년이 넘게 불리고, 기억되는 김광석이라는 가수가 때로 부럽기도 하다고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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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솔직히 마니아라고 할 정도로 큰 애정을 보이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 자리가 무척 행복하고, 아름다웠다고 느꼈는데 그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몹시 고운 사람들이었던 까닭이다. 무대 위의 사람들이 어떤 마음과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지고 전달되었던 까닭이다. 약간의 아쉬움과 약간의 슬픔과 이제는 회환과 원망을 넘어서서 '그가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기억을 아름다움으로 추억할 수 있는 정도의 마음이 된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15년이다. 이제는 울음이 아닌 웃음으로, 추모가 아닌 축제로, 회한이 아닌 추억으로 고인을 기릴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이제는 '추모 공연'이 아니라 '김광석 다시 부르기'의 축제로 거듭날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상처에 새 살이 돋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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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빼놓을 수 없었던 순간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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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의 <고등어>로 시작된 초대 손님들이 풀어놓은 노랫가락들. <서른 즈음에>를 작사, 작곡한 강승원씨의 노래도 애절했고, 백순진 선생님이 불러주신 <등불>도 무척 마음에 와닿았다. 몸이 안좋았던 이은미씨의 시작으로 이어진 김광희 선생님이 불러주신 <세노야>도 아마 두번 다시 듣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유해인씨의 노래와 피아니스트 김광민씨의 연주는 단아했고, 이정열&서우영씨의 노래는 흥겨운 마무리에 부족함이 없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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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수줍은 꽃 같아서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연과 행운, 인내가 필요하다. 인연의 한자락이 닿아서 용케 여기까지 왔구나.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롭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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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아르가디니, thanks♥]]></description>
<category>기타장르</category>
<category>공연장 마실</category>
<author>빨간그림자</author>
<pubDate>Sun, 09 Jan 2011 04:33:5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남한산성/ 김훈</title>
<link>http://redshadow.pe.kr/tt/index.php?pl=1099</link>
<description><![CDATA[ <br><table align=left><tr><td style=padding-right:5><center><img src="http://redshadow.pe.kr/tt/attach/0104/110104151221194421/627797.jpg" width="150" height="221" alt=""></center></td></tr><tr><td class=cap1></td></tr></table>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까지 읽고 나니 왜 김훈이 에세이스트로서 더 높이 평가되는지 알 것 같다. 가장 좋은 작품은 역시 <칼의 노래>이다. 그 책은 김훈이라는 작가 말고는 아무도 쓸 수 없는 글이다. 작가의 무늬와 이순신이라는 무장이 만나서 합일을 이룬 보기 드문 경우다. 작가가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잘 쓸 수 있는 소재를 만나서 크게 날개짓을 했다고 평가 해야할까.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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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redshadow.pe.kr/tt/index.php?pl=1079" target="_blank"><font color="#177FCD"><현의 노래>을 읽으면서 의아했던 점</font></a>이 '악공'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장군'의 이야기였다는 점이었다. 가야의 악공 우륵은 신라 장군 이사부를 넘지 못한다. 이사부의 한 면모가 따로 떼어져 나온 게 우륵일 뿐이다. 우륵은 춤과 음악에 심취한 딴따라가 아니라 칼이 아닌 현을 쥐고 있는 장군이었다. 나는 그가 매우 낯설면서도 매혹적이었다. 허나, <남한산성>까지 읽은 지금에야 알 것 같다. 이들은 모두 원형적인 한 인물의 변형이라는 것을. 굳이 그것을 '이순신'이라는 이름으로 환원하여 전작의 변주라고 단정하고 싶진 않다. 무관(武官). 아마 그게 맞을 것이다. 삶과 죽음을 한 길로 마주하고 서서, 말의 헛됨을 허허로워하는 지적인 강한 남성. 이 인물이 계속해서 변주된다. 나는 그것이 작가의 무늬라고 생각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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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대군을 이끌고 성을 포위한 몽고군에게 화친하자는 무리와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무리의 어지러운 말들이 난무한다. 말의 헛됨과 경박함에 대한 작가의 오랜 회의는 빛을 발한다. 허나, 조선을 말발굽 아래에 짖밟은 칸과 용골대의 모습이 하도 이상하여서 글을 읽다 잠깐씩 맥락이 끊겼다. 그네들이 초원의 전사이기는 하나, 간단명료하여 청아하기 까지한 기백들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인가. 작가는 왜 그들을 그렇게 보는가. 만약 전사이기에 그렇다하면, 어찌하여 임진왜란의 왜군은 그리하지 않았던가.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사이의 간극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찌하여 청군은 망해가는 조선을 측은해하는 강자의 연민이며, 왜군은 까막득하게 밀려오는 죽여도 죽지 않는 삶의 피로함인가.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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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과 힘과 전쟁에 대한 작가의 속내를 짚어가는 내 행위가 옳다면, 작가의 에세이들을 한 줄 한 줄 짚어가며 공명하고자 했던 내 노력이 헛되지 않다면, 그 차이는 '전쟁의 승패'에 달려있다. 임진왜란은 피로함 끝에 이긴 전쟁이었고, 병자호란은 지는 전쟁을 끌고 있는 지난함이었다. 그리하여 조선을 깨트리던 청은 힘의 우위를 가진 올곧음이지만, 조선과 명에 의해 밀려가던 왜는 혼탁한 조정과 더불어 주인공을 실존적 고난으로 밀어붙이던 장애물인 것이다. 그래서 <칼의 노래>는 이겨야 하는 싸움을 이기기 위해 분투하는 고독한 개인이 나오지만, <남한산성>에는 져야 하는 싸움을 지지 못해서 질질 끌고 있는 어리석은 헛된 명분이 등장한다. 이 한계, 이 차이에 살짝 전율이 인다. 이런 걸 약육강식에 기반한 세계관이라고 해야하나. 칼로 남을 이기고, 칼로 남에게 지는 것을 순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보는 세상의 흐름이다. 매혹적이고, 단아하지만 또한 위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래서 김훈을 '붓을 쥔 무인'이라 부르는 것이로구나. 그의 손에 칼이 쥐어졌다면 세상이 조금 더 위험해졌을지도 모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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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언어, 담론에 대한 피로감이 행위없이 논쟁만 일삼는 부류들에 대한 힐책이라고 느꼈었는데, '뭘 말로 하냐. 한판 붙자!'라는 힘의 우위로 구조를 명확하게 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던 것인가. 허나, 생노병사에 시달리는 육체에 대한 연민과 명분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무지렁이 남백성에 대한 애정을 지켜보면 단순히 힘의 논리에 심취해 있다고 보기만은 어려운 구석이 있다. 또한, 결국 작가가 쥐고 있는 건 칼이 아닌 붓이다. 이유가 무엇이었던간에 자신의 본성과 가장 맞지 않는 동네에서 이질감을 느끼며 부대끼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예를 들면, 교황청에서 과학을 연구한다거나 뉴욕에서 농촌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스스로가 군인이 아닌 작가라는 것을 가장 못견뎌하는 것은 작가 자신이 아닐까. 글을 넘어서는 칼의 힘을 굳이 글로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러니에서 작가의 통찰이 빛난다. 그가 언어의 힘을 의심할 때 그의 언어가 가장 날카롭다. 진정한 아이러니다.]]></description>
<category>읽다</category>
<category>바벨의 도서관</category>
<category>김훈</category>
<author>빨간그림자</author>
<pubDate>Tue, 04 Jan 2011 15:42:4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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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젊은 베르테르의 슬픔</title>
<link>http://redshadow.pe.kr/tt/index.php?pl=1095</link>
<description><![CDATA[ <br>창작 뮤지컬로서 오래도록 사랑받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았다. 그곳에서 젊고, 아름답고, 섬세한 새로운 베르테르를 만났다. 서영주, 엄기준, 민영기, 올해 만난 송창의까지 참 많은 베르테르를 겪었는데 언제나 내 마음은 초연의 서영주씨가 최고라고 간직되어 있다. 송창의는 마스크와 성량, 섬세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였고 꽤 진실하고 절절하게 베르테르를 표현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도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 해가 지날수록 점점 이 작품이 내 안에서 빛을 잃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반복해서 보고 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점점 진부하고, 지루한 느낌이 드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어하다 20대 중반의 반짝반짝한 감수성을 가진 남자배우 동생과 술자리를 하면서 깨달았다. 그애는 참이슬이 가득 찬 소줏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소리쳤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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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첫눈에 반한다는 건 그런 거예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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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불륜극이 되어가는 느낌인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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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한다는 건 그런 거잖아요! 갈팡질팡하고, 남의 여자니까 더 아프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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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깨달았다. 아, 내가 이 작품을 처음 보고서 가슴 떨렸던 때가 스물 둘이었구나. 작품 퀄리티도 차이가 있겠지만 그 모든 걸 다 떠나서 관객의 감수성의 변화가 훨씬 크구나. 작품이 10년간 변해왔다. 하지만 보다 크게 변한 것은 바로 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말 그대로 "젊은"에 방점이 찍혀있구나. 물론 저 대사를 내뱉은 사람이 하필 배우이고, 그네들은 보통 낭만적인 감수성에 흠뻑 젖어있는 사람들인 만큼 남성 일반으로 확대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는 듯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서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란 원래 그런거다!'를 진지하게 성토하는 아우를 보며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그래그래. 네 말이 맞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고민은 유효해. 인간이 젊음을 거치는 동안은, 인류가 첫사랑을 하게 되어있는 동안은. 그래서 혼자 깊이 반성해 보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을 다 아는 척하면서 지나간 경험들에 대해 함부로 폄하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겸손함은 가질 수 있기를. 첫사랑, 첫키스, 첫실연 등등의 순간들이 가지고 있던 날카롭고 섬세한 감정의 충돌과 혼란들을 이제 나는 겪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존중할 정도의 사람이 되기를.]]></description>
<category>뮤지컬</category>
<category>공연장 마실</category>
<author>빨간그림자</author>
<pubDate>Wed, 29 Dec 2010 16:56:4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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