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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hakanphotography


'천의 얼굴'을 갖고서 배역마다 성격이 변하는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도 쓰는 이야기에 따라 변한다. 슬픈 이야기를 쓸 때면 슬퍼야 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쓰려면 밝아야 한다. 나는 이 과정을 /증폭/이라고 부른다. 보다 진한 감정을 끌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전달할 수가 없다. 내가 슬퍼야 그것을 읽는 이가 슬프다. 내가 행복해야 그것을 읽는 이도 행복하다. 일종의 /전염/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염/시키는 것은 에너지를 꽤 많이 필요로 한다. 나는 평상시에 희노애락을 강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더욱 큰 에너지의 필요를 느낀다. 결국 /자극/을 찾게 된다. 슬픈 감정을 더욱 슬프게 만들어주고, 행복한 감정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책, 영화, 사건, 사람, 관계 등등.

요즘 내가 느껴야만 하는 감정이 있다. 밝고, 유쾌하고, 생명력이 넘치며, 행복한 감정이다. 싱그럽고, 무모하며, 열정적인 스무살 남짓한 청춘들을 그려내야만 하는데 그게 퍽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어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삼십대 중반을 달려가는 몸으로 이십대의 감수성을 가지려니 죽겠구먼. 밝고, 예쁘고, 따뜻한 것들을 붓고, 또 부은 후에야 겨우겨우 감정이 변화하겠지. 어느날 갑자기, 불연듯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싶도록 깜짝스럽게.

처음으로 하이힐을 신고, 서툰 화장으로 립스틱을 바른 후 데이트를 나가는 여대생의 종종걸음. 세상에 대한 불안을 애써 호기롭게 누르고 있는 갓 소년 티를 벗은 남자의 가늘고 긴 손가락. 하루종일 닭갈비를 구워내서 머리카락에서 냄새 난다고 피곤한 얼굴로 웃는 아르바이트생의 옆모습.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내가 사랑할 만한 것이. 내가 반할 만한 것이. 서툰 입맞춤과 유난히 쿵쾅거리던 심장소리와 살갗과 살갗이 마주치는 감촉들. 애써 떨림을 감추는 어린 연인들의 서툰 애무. 너를 위해 인생을 걸겠다는 호기로운 장담과 맹목적으로 탐닉하는 둘 만의 시간. 또 뭐가 있더라. 뭐가 있더라.....

불온하고, 변태적인 욕망을 시험해 보고 싶은 도발과 그래도 그러면 안될 것 같아 금기에 망설이는 순수함. 첫사랑, 첫키스, 첫섹스. 동시에 첫배신, 첫이별, 첫상처까지. 아름다운 순간도 처음이지만 더러운 순간도 처음이어서 스스로가 낯설어서 쩔쩔매던..... 허물벗기의 시간.

그 시간을 다시 내게, 불러들여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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